오랜만에 자본 아주 깊고 깊은 잠이었다”
4년의 투병 끝에 아내가 죽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딸의 오열에 오상무는 암이 재발했다는 말을 듣고 터트린 아내의 울음소리를 떠올렸다. 화장품 대기업 중역인 오상무는 헌신적이고 충실한 간병인이자 남편이었다. 장례식장은 어느 새 손님들로 가득하고, 부하직원들은 오상무의 결재를 필요로 하는 서류들을 가지고 온다. 신규 화장품 출시를 앞두고 광고 카피와 부분 모델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도 오상무의 신경은 다른 쪽에 집중된다. 까만 바지 정장을 입고 문상을 온 부하직원 추은주는 오랜 기간 오상무의 연모의 대상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이번 영화는 현대를 살면서 인간으로 도리 없이 올라오는 감정, 그 감정이 여성을 향한 것이든 그 이외의 것을 향한 것이든 마음이 가는 결을 그대로 찍어 기존에 했던 영화와는 면모나 형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전 작품들과의 차별화를 밝혔다.
“영화라는 것은 나이만큼 살아낸 세월에서 쌓은 경험들이 누적된 것을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고 세상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은 것들을 담아낼 수 있다는 뜻”이라는 그의 말처럼 <화장>은 세월만큼 깊어진 시선을 바탕으로 새로운 면모와 형식에 도전한 임권택 감독의 역작이다. '
[ About Movie ]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신작
베니스, 베를린 등 전 세계 16개 영화제 초청과 극찬
영화 <화장>은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신작이다.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시작으로 2011년 “101번째가 아닌 첫 번째 데뷔작이라고 생각”하며 만든 <달빛 길어올리기>까지 무려 101편을 연출, 세계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혁혁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시 102번째 작품인 <화장>을 만들며 ‘영원한 현역’의 진면목을 증명했다.
<길소뜸>(1986), <티켓>(1986), <씨받이>(1987),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춘향전>(2000)까지 이어진 대중적 흥행과 <취화선>(2002)의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까지 예술적 성취를 이루며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임권택 감독은 항시 ‘사람들’의 삶을 영화 속에 그렸고, 한국사람들의 역사와 삶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대화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질문을 던져왔다. 그리고 새 작품 <화장>에서는 죽어가는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동서고금을 관통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인 삶과 죽음, 사랑과 번민이라는 소재를 임권택 감독만의 무르익은 성찰의 시선으로 그려내 한국적인 것을 넘어 세계와의 예술적 공유를 꾀했다.
이에 <화장>은 제7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토론토 국제영화제, 밴쿠버 국제영화제, 부산 국제영화제, 하와이 국제영화제,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런던한국영화제, 마르 델 플라타 국제영화제, 브리즈번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아시아태평양 영화상,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뉴라틴아메리카 국제영화제, 인도 케랄라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홍콩 국제영화제, 아시아 필름 어워드까지 전 세계 16개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토론토 영화제에서는 “인생, 죽음, 사랑에 대한 성숙하고 강렬한 시선”이라는 평을, 베니스 영화제는 “진정한 ‘마스터’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라며 해외 유수 영화제의 극찬을 받았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원작
임권택, 김훈, 안성기 세 거장의 만남
최고와 최고가 그려내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인생의 깊이
<화장>은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김훈 작가의 [화장]은 모든 소멸해 가는 것과 소생하는 것들 사이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존재 의미를 냉혹하고 정밀하게 추구한 대작으로 평가 받은 작품이다.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게 더 많은 소설”이라는 김훈 작가의 자평처럼 <화장>은 반대되는 것들의 다른 듯 같은 두 얼굴을 포착한다. 두 여자를 사랑하는 남성의 심리를 세련되게 표현해 시체를 불태우는 ‘화장’(火葬)과 얼굴을 곱게 꾸미는 ‘화장’(化粧)이라는 이중적 소재의 배합으로 젊은 여자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생명과 한 순간에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인간의 생(生), 사(死)를 오롯이 한 그릇에 담았다.
탄복을 자아내는 미려한 문장과 날카로운 통찰을 겸비한 김훈 작가의 작품에 임권택 감독은 “김훈 선생의 문장이 주는 엄청난 힘과 박진감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은 굉장히 해볼만하다”며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더불어 “나는 지금 김훈 선생이 만들어낸 ‘화장’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 지금부터 내 색깔을 드러내고 찾아내며, 또 김훈 선생이 담아낸 깊은 작품 세계 안으로 내 자신도 깊숙이 잘 들어갈 것이다”라며 포부를 전한 바 있다.
또한 안성기는 임권택 감독과 1964년 <십자매선생>을 시작으로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오염된 자식들>(1982), <태백산맥>(1994), <축제>(1996)를 비롯해 <취화선>(2002)에 이어 12년 만에 재회하고, 김훈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 벅찬 감흥을 표한 바 이번 영화에 대한 자타의 기대만큼 안성기는 내공으로 다져진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죽음과 젊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년 남성의 연민과 고뇌라는 마음 안의 상(像)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한편, 이제껏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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